[자막뉴스] 인사동 땅 밑은 '보물' 창고…누가 왜 묻었을까<br /><br />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만 사용된 '동국정운'식 표기법.<br /><br />한자음 대신 우리 표준음을 정립하고자 했던 세종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, 이 표기법을 쓴 금속 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.<br /><br />서울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부지 내 유적에선 이를 비롯한 조선 전기의 금속 활자들이 항아리에서 쏟아졌습니다.<br /><br />그 수는 약 1,600여 점. 크기와 형태, 서체도 다양합니다.<br /><br />[이승철 /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팀장] "활자의 모양, 크기 이런 것들을 실물로 조사할 수 있기 때문에 금속활자 인쇄 발달사를 복원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."<br /><br />여기엔 1434년 만들어진 '갑인자'로 추정되는 한자 활자도 다수 포함됐습니다.<br /><br />연구 결과 '갑인자'로 확인되면 구텐베르크의 인쇄 시기보다 앞서 제작된 금속활자를 최초로 확보하게 된다는 설명입니다.<br /><br />이번 발굴에선 세종 때의 천문시계인 '일성정시의' 일부와 자동 물시계의 주전으로 보이는 동제품, 동종과 총통도 함께 나왔습니다.<br /><br />특히 '일성정시의'는 그동안 기록으로만 전해온 것으로, 세종대 과학기술과 유물 복원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될 전망입니다.<br /><br />다만 이 같은 금속 유물을 누가, 왜 매립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.<br /><br />[오경택 / 수도문물연구원장] "동이 귀하니 잘라두고 재활용을 하려다가 급박한 사건이 생겨 묻어두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못 돌아와서 현재까지 묻혀 있어 전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."<br /><br />출토된 유물들은 보존처리와 분석 과정을 거쳐 분야별 연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.<br /><br />[취재 : 최지숙]<br /><br />(끝)<br /><br />